19-2. 진실
# "진실은 허구보다 취약하다. 그 이유는,
1>진실은 생산 비용이 크다. 진실을 밝히려면 증거를 모으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허구는 그저 만들어내면 된다.
2> 진실은 복잡하다. 현실은 본래 단순하지 않지만, 허구는 쉽게 단순화할 수 있다.
3> 진실은 불편할 수 있다. 진실은 때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허구는 우아하게 꾸밀 수 있다." (유발 하라리)
이러한 이유로 진실은 수시로 허구로부터 도전을 받는다.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특히 그러하다.
불완전한 대중은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비록 스스로 실천은 하지 못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구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허구는 더욱 그러하다.
질투의 소산이다.
요즘 거짓뉴스가 난무한다.
진실을 밝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악용하는 것이다.
거짓의 당분을 빼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군중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멀어져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즈음 기억력이 쇠락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쇠락한 척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양심이 쇠락하였기 때문이다.
거짓이 활보하기 좋은 세상이다.
사람들은 신기루를 진실로 착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없다면 인생의 행복과 불행도 절반씩 줄어들 것이다.
군중의 의견이나 박수는 일종의 신기루다.
끊임 없이 변화한다.
이에 의존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신기루를 진실이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군중이 외치면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는데도 진실이라 외치는 사람들과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치 동물농장같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진실을 판별할 수 없는 경우 신의 깊은 뜻을 찾으려 노력할 일이다.
진실을 판별할 수 없더라도 인생길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없으면 한 없이 불안하다.
진실이 아닌 길은 잠시도 걷지 말라.
그러한 길은 결국 불행의 길과 이어져 있다.
속히 그 길에서 탈출하라.
시간이 지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요행을 바라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내걸고 벌이는 도박이다.
도박에서 승리할 확률은 아주 희소하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영혼이 피폐하여 불행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으면 속히 진실을 밝히고 속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실수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실수를 조금도 하지 않는 인간은 없고, 실수를 하였지만 속히 속죄하는 용기를 내는 사람도 드물다.
# 거짓을 은폐하는 것은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려는 행위다.
거짓이 진실을 꾸짖으며 비웃는 행위가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이것이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지성인이란 거짓을 진실처럼 교묘하게 꾸미는 능력을 가진 자'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진실이 밝혀져도 거짓을 꾸미는 자에 대한 박수를 거두지 않는 군중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거짓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영혼이 피폐한 사람들이다.
이는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인문학 경시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스스로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존립에 대한 상당한 위기상황이다.
특히 언론에 의한 가스라이팅은 박수부대와 투표부대를 양산한다.
입법, 사법, 행정, 언론이 하나의 세력에 귀속되면 독재국가다.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에 의한 것은 아닐까'라고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한다.
거짓이 묻힌 대지는 오염되어 새싹이 나기 어렵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짓은 끝까지 추적하여 진실을 밝혀야 하다.
이것이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길이며 문명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노력을 두고 너무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한 비판은 거짓을 은폐하거나 보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경우 거짓의 망령이 세력을 확장하여 세상이 짙은 어둠에 휩싸이게 된다.
어둠의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과제다.
재판은 진실을 기초로 법논리에 의해 분쟁의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법논리가 아무리 해박해도 진실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
능력부족이나 편견에 의해 진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그 판결은 정의로울 수 없다.
심지어 어둠의 세력을 감싸는 칠흑같은 판결도 있다.
거짓이 불완전한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용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짓을 묻어두고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또 다른 거짓의 유혹에 빠지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은폐된 거짓이나 후회하지 않는 거짓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득도에 이르면 연민은 가능할 것이다.
(2025.4.1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