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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학문

주라필 2025. 1. 2. 16:19

#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맹자)

"위대한 사상가는 이따금 불꽃처럼 마음속에 밝게 피어오르는 사상을 늘 주시하며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에머슨)


맹자는 성선설의 입장에서, ''오감의 발달과 욕망으로 인해 타고난 선함이 훼손되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교육이다''고 하였다.

당시의 학문이나 교육의 목적은 요즘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인성의 개선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그것이 옳다는 것을 느낀다.

졸업은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에 의미 있는 조그만 매듭이다.
이러한 때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공허해 진다.
공허해진 마음에 다시 희망을 채운다.
젊은 시절의 행복한 모습이다.

현명한 질문과 현명한 대답, 이것이 학문의 길이다.
현재로서는 현명한 대답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질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대학이 존재하는 한, 인류가 꾸준히 진리를 위해 정진하는 한 언젠가는 현명한 대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현명한 질문을 할 수 있으면 현명한 대답의 길을 절반 정도는 걸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명한 질문을 하였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현명한 대답은 시간문제다.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에 충실하고, 내일에 희망을 가져라.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문제가 어려우면 몇 가지 논점으로 나누어 각 논점마다 질문을 하고, 심혈을 기울여 연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들을 토대로 논리를 세우면 전체에 대한 현명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인문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시각에 따라 세상은 아름다울 수도 추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은 인생을 어둡게 한다.

인문학에 관한 서적들은 동어반복이 많다.

선대들의 학문적 업적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도 많다.
그러한 부분을 제하면 도서관의 서적들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까지 진부하게 설명하는 서적은 독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  "인문에 대해 논하는 자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것처럼 지상의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것의 혼합과 대조를 이루는 것에 의해 형성되는 전체의 질서라는 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플라톤)

 

책은 행간의 내용을 독자 스스로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간단명료하게 써야 한다.
독자가 행간의 내용을 생각하였다면 이를 책의 여백에 기재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다시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백에 기재한 글들을 정리하면 의미 있는 책이 탄생할 수도 있다.
타인의 글을 통하여 정신이 고양되고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성격의 인간을 등장시키거나 비정상적인 것을 내용으로 하는 서적은 인간의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서적을 읽는 것은 세균이 득실거리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수익을 지나치게 고려하면 이러한 서적이 많아진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지 못하는 서적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교사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

모든 학문은 인문학이 개척한 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길에서 과도하게 벗어난 학문은 위험하다.

학문이라는 탑은 인류가 아직까지 쌓아올린 높이에서 더 쌓아 올려야 진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인류가 그동안 쌓아 올린 높이가 상당히 높아 그곳에 올라가는데도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
그 높이에 오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능력이 못미쳐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에 오를 수 없는 사람도 많다.
학문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자연에 대한 지나친 과학적 분석은 인문학적 감동을 약화시킨다.
자연을 초월한 영혼의 세계에 관하여서도 관심을 가질 일이다.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그 속에 있다가 나중에 거기서 나오는 일이다.

먼저 포로가 된 다음에 석방되어야 하며, 매료되었다가 환멸을 느껴야 하며, 열중했다가 그 열기가 식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미엘)

 

사물이나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창조자나 창안자의 입장이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애착을 가져야 한다.

이방인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서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기는 어렵다.

이 경우 찬양이나 비판이 올바르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지식은 이를 초월한 세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불완전한 지식으로 인한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을 통하지 않고는 그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지식을 추구하되 지극히 겸손할 일이다.

습득된 지식이 오만과 합쳐지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지식을 접할 때는 성경을 접할 때와 같이 경건해야 한다.
지식은 무수한 사람들의 피땀과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많은 시간 정신의 세계를 거닐며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일종의 종교생활과 같은 마음가짐과 인내가 필요하다.

어느 시기에 문득 신의 계시 같이 새로운 이론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학문은 무한하고 인생은 유한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 필요성을 절감한다.
드넓은 학문의 세계를 방황하다 보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학문의 길은 구도자의 길이다.
세속적 행복을 원하는 자는 학문의 길에 적합지 않다.
학문의 세계를 거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행복은 은은하고 영원하다.


학문의 길은 개척자의 길이다.
이미 이룩된 길을 통하여 미개척지를 개척한다.
이러한 느낌 없이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극히 불행하다.

 

이따금 세속적 행복에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반성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선다.

길을 인도하는 마음의 소리에 감사한다.

#  "현재 학문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의무를 권리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공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해롭다.
악마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식이 많아 세상이 평화롭지 않다.

이에 대한 인식이 너무 미흡하다.

지식을 다루는 학문은 많아도 지혜를 다루는 학문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혜에 관한 설교를 싫어한다.
그러나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행복은 지혜에 달린 문제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은 전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졸업한 이후에야 대학이 에덴동산이었음을 깨닫고 아쉬워한다.

대학은 진리탐구의 습관과 방법을 키워주는 곳이다.
대학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식은 평생 습득하여야 하는데, 대학에서 길러진 진리탐구의 습관과 방법에 따라 졸업 후의 지식추구와 생활방식에 상당히 큰 차이가 나게 된다.
이러한 것이 쌓여 성공자와 실패자가 결정된다.

사회적 출세의 관점에서만 대학을 바라보면 경박해진다.
출세에 혈안이 되면 진리탐구의 기쁨이 상실되어 오히려 성과를 내기 어렵다.
즐겁게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것이 학문적 성과에 큰 도움이 된다.

즐겁게 탐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대학교육이 지식 뿐 아니라 지혜에 촛점을 두어야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진정한 인식은 시작된다.

어떤 것을 인식하려 할 때 그것이 학자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소로우)

 

(2025.4.1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