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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영혼

주라필 2025. 1. 11. 15:28

#  "성당의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고, 마음에 슬픔이 있냐고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어요.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있어요.

잘 오신 겁니다.

오늘 밤 여기서 묵어가시오.

ㅡㅡㅡㅡ

장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내가 은촛대도 드린다고 했는데, 왜 은식기만 가지고 가셨소.

헌병양반.

수고가 많소.

은식기는 내가 준 것이니 이 사람을 풀어주시오.

ㅡㅡㅡㅡㅡ

장발장, 나의 형제여.

오늘부터 당신은 악을 떠나 선의 나라로 들어가는 겁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샀어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파멸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빅토르 위고)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하나를 훔쳤다가 19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형량을 채우고 자유를 얻었지만, 어디를 가도 경찰에게 보고를 해야 하였다.

막 출소한 전과자에게는 일자리는커녕 먹을 것과 잠 잘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가 밤거리를 헤매다 성당에서 신부님을 만나 회개에 이르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그는 마델린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당선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경찰 자베르는 악한 인간이 선한 인간으로 변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발장을 끝까지 추적한다.

 

인간의 영혼이 변화될 수 있는가.

자베르의 생각이 옳은가.

위 글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영혼은 눈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눈맞춤을 피하는 것은 영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오감은 외부와 통하는 창이다.
영혼은 오감에 의해 시시각각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을 줄여주는 것이 양심이나 이성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오감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점차 무뎌진다.

감각은 생존과 관련하여 진화한 것이다.
행복은 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구도자는 감각의 영혼에 대한 영향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감각을 극복하는 것은 육체적 존재의 차원을 초월하는 것이다.

사망하면 영혼은 육체적 질곡을 벗어나 평화로울 것이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그런데 육체로 인하여 3차원적 제약에 익숙해진 것 뿐이다.
이런 제약에서 탈피한다면 사망하더라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일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현세를 어둡게 할 이유가 없다.

종교를 선택한다면, 죽음의 세계에 관하여 가장 긍정적인 교리를 가진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세의 행복에 관하여 지나치게 현세에서의 선행을 전제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간의 천성에 반하고 불공평하다.
공평하려면 인간의 천성을 모두 동일하게 창조하였어야 할 것이다.

 

중병으로 감각의 고통이 장기간 지속되면 영혼이 상처를 입는 것 같다.

그러나 내세에 이르러 점차 회복될 것이다. 

영혼이 최초로 현세에 이르렀을 때 미약한 상태였지만, 점차 회복된 것처럼.


#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육체에는 3차원적 제약이 있고, 이것이 영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영혼은 이러한 3차원적 제약을 초월한 존재다.
육체는 영혼에 종속된 존재로서 영혼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바타는 유지보존에 지나치게 고비용이 필요하고, 3차원적 한계로 인하여 영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육체 자체의 생존과 관련하여 욕심이라는 본능이 영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영혼은 이러한 점에 불만을 느끼고 잠시나마 아바타에서 도피하기 위해 담배, 술, 마약, 게임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럴수록 아바타는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로 변모된다.

최근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 육체와 다른 아바타를 만들어 도피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와 같이 영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육체를 모방하거나 전제하여 또다른 아바타를 만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동물의 눈을 가만히 살펴보면 문득 영혼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눈은 영혼을 엿볼 수 있는 창이다.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 (아나톨 프랑스)

길을 거닐다가 고양이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가만히 바라보니 두려움과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 어려있다.
문득 슬픔이 엄습한다.
인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볼 때처럼.

고양이를 저렇게 만든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정에 의해 고양이를 무력화한 것이다.
실상 인간도 동일한 것 같다.

 

(2025.4.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