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단문 (22.)
1.
공감
공감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공감하는 노래에 광분하는 군중을 보라.
공감하는 미술품에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는 미술 애호가를 보라.
전자기기도 공감을 얻으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게 된다.
공감으로 흥분하는 사람은 이성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공감은 감정에 맞는 것이며, 옳고 그름이나 경제성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선동가들은 공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좀비로 악용하기도 한다.
공존
슬피 흐느끼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행복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람도 행복의 대열에 합류시켜야 한다.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책무다.
관심
세상을 보통명사로 바라보면 너무 삭막하다.
대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고유명사로 바라보아야 친근감과 생동감이 넘치게 된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으로 피어난다.
꽃샘추위
계절의 변화는 순탄치 않다.
수없이 전진과 후퇴가 거듭된다.
이는 모든 변화에 해당하는 말이다.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성도 역경이다.
변화에는 역경의 극복이 전제된다.
변하지 않으려는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역경의 극복 없이 획득한 면류관은 가치가 없다.
면류관의 주관적 가치는 역경의 크기에 비례한다.
권리
권리는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영원하지 않다.
궁극적인 권리가 어디 있는가.
일시적으로 부여된 것이므로 모두 조만간 반환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남용이 방지되고 상실의 아픔이 줄어든다.
기적
그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자 은총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위험도 많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간 위험은 얼마나 많았으랴.
나무
소나무는 송홧가루를 가득 머금고 있다가 바람이 부는 순간 확 내뿜는 것 같다.
마치 연기가 확 피어 오르는 것 같다.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바람에 날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람을 이용해 날아가는 것 같다.
나무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나뭇가지들이 만드는 기하학적 문양.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손들.
마치 구도자 같다.
낙엽
가을이 깊어 산천은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었다.
이제는 떠날 시간.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흩날린다.
우수수 떨어진다.
얼굴에도 스친다.
마지막 모습이 쓸쓸하다.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걸어간다.
경건한 모습이다.
낙엽은 문득 인생을 바라보게 한다.
남녀
동물세계에는 암컷과 수컷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암컷과 수컷의 역할이 분화되어 있다. 인간의 경우도 동일하다.
흔히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 의미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리하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남녀평등의 기치하에 남녀가 모두 중성화 되어 가는 듯하다.
남녀유별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치부된다.
일부는 옳고 일부는 그르다.
이념에 따라 개성을 상실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성에 따라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이 명백하다.
다르게 사는 것이 신의 뜻이다.
능력
사람의 능력은 가지각색이다.
철거를 잘 하는 사람에게 건설을 하도록 하면 공사를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
상대방 공격에 능한 사람에게 정권을 맡길 경우 정치를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
파괴의 능력과 건설의 능력은 다르다.
능력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번영하기 어렵다.
인간의 총체적인 능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다양성
이 세상에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 이외에는 완전히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도 각인각색이다.
이것은 신의 창조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신의 창조물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존재이유가 있다.
각 창조물이 자신의 특성을 발휘하는 것이 신의 의지라 할 수 있다.
다른 창조물을 모방하는 것은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신의 창조원리에 반하는 일이다.
달
달은 차는가 하면 기울고 기우는가 하면 찬다.
흥망성쇠는 우주의 질서다.
달은 해에 비해서는 이지적이고 낭만적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은 달에서 낭만을 앗아갔다.
오만의 산물이다.
담배
담배를 피우면 몽롱한 상태에서 가까운 곳은 보이지 않고 인생의 너무 먼 곳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담배를 많이 피우면 그렇게도 동경하는 머나먼 내세로 속히 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술도 동일하다.
대의명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대의명분의 뒷받침 없는 행위는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이 가식적일 수는 있지만 이것이 최악의 사태를 방지해 주는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부끄러운 내용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고, 일단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이상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
동물들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면 인간과 정신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느낀다.
동물에게 해맑은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소의 눈망울을 쳐다보고 있으면 죄의식을 느낀다.
육식은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
만남
이른 아침 창문을 여니 기다리고 있던 서늘한 바람과 이슬비를 만난 나뭇잎들의 환호성이 몰려온다.
멀리서 산비들기의 구구구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타인과의 만남이 기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요나 의무에 의한 것이라면 불행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만남이 대부분이다.
너무 삭막하다.
기쁜 마음으로 머나먼 곳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눈물을 글썽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곰곰히 얼굴을 떠올려 보자.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이나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무인도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러한 관계는 급조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친 삶의 귀결이다.
일방적이어서는 한계가 있다.
서로 노력하여야 한다.
영웅은 많지 않기에.
2.
명상
명상은 영혼을 정화하는 과정이다.
영혼을 쉬게 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명상 과정의 온갖 잡념은 악마의 소행일까.
모닥불
모닥불은 향수를 불러온다.
추억도 불러온다.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따뜻하게 한다.
모닥불의 춤은 현란하다.
고요한 나무 속에 숨어있던 열정이다.
배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인간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약육강식이라는 일반적인 자연질서와는 명백히 다른 현상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은 인간사회보다는 일반적인 자연질서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타고난 심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변화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충격적 경험에 의해 감성이 변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을 종교적으로는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발전
발전을 하려면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끊임없이 동일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그 중 일부가 이유 없이 삭제된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고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매일 새로울 것이 거의 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본주의는 끝없는 발전을 지향하며, 이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 모두 불행하게 될 것이다.
끝없는 발전이란 불가능한 욕망이고, 이를 위해 무리한 수단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발전을 통한 행복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된다.
소위 발전한 나라들에 대한 선망이 없다.
빛
빛은 수많은 갈래의 광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광선은 파장이 다르다.
프리즘을 통과한 색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광선 상태에서는 색상을 구분할 수 없다.
각 광선은 혼합되어 있어 색상의 혼합 즉 백색으로 으로 느껴질 뿐이다.
자외선도 적외선도 혼합되어 있다.
각 광선의 속도는 같다.
파장이 달라도 동일하다.
왜 광선의 속도가 30만 키로인가.
태양에서 분출되는 빛은 백색인데 태양 자체는 왜 붉은 색인가.
태양도 빛에 의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태양도 백색으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촛불 전등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태양, 촛불 전등불 자체의 모습과 이로부터 분출되는 빛과는 다르다.
태양을 바라볼 때에는 태양자체의 모습 뿐 아니라 이로부터 분출하는 빛이 뒤섞여 있다.
반사한 빛도 같은 속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량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빛에 중량이 있다면 빛이 지속적으로 흡수되는 경우 흡수하는 물체의 질량이 증가하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프리즘을 통과한 광선은 파장에 따라 분류된다.
분류된 광선을 다시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하나의 색채의 광선만 나타날 것이다.
사업
사업에는 필연적으로 성공과 실패가 병존할 수밖에 없다.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다.
사업에는 반드시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므로 내려갈 힘이 소진될 정도로 오르막에 모든 힘을 투입하면 추락할 우려가 있다.
사회
어느 사회나 국가의 성숙도는 지배이데올로기나 주류 여론에 반하는 주장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개인의 성숙도도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타인의 주장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이나 자신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실천하여야 평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유명하다는 것이 반드시 뛰어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이 좋아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대중이 좋아하려면 그 내용이 어렵거나 무거운 내용이어서는 안된다.
유명하다는 것과 존경스럽다는 것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의 통제기술은 교묘하여 통제를 당하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공공연한 통제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방식을 택한다
산책
산책을 할 때는 육체와 정신이 조화된 상태다. 시간이나 목적지의 구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거니는 것이 이상적이다.
산책은 몸을 통한 기도다.
목탁을 두드리듯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너무 걸음에 집중하면 명상에 방해가 된다.
목탁을 두드리며 무아의 경지에 이르듯 자연스럽게 걷고 걸으며 명상에 잠긴다.
산책을 하며 자연과 내적 대화를 한다.
이심전심.
동행자가 있으면 자연과의 대화에 장애가 된다.
생일
생일은 부모와의 특별한 인연을 상기하는 날이다.
인간은 누구나 맨손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한 상태를 벗어난 것은 부모님의 은덕이다.
생일은 이러한 과거를 되돌아 보며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소음
현대인은 소음에 익숙해져 있다.
소음이 없이 고요하면 불안해 한다.
자연의 소리나 신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양심의 소리도 들리기 때문이다.
선거
표가 많은 곳에 세금으로 돈을 뿌리는 정책을 쓰는 정당이 선거전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암암리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인간성의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선거제도는 잘못 운용될 경우 다수자의 폭압의 정당화 장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자 보호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상 가장 나쁜 제도다.
집단적 이기주의를 정의라 칭송하며 이에 대한 저항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득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것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다.
설득은 자신의 완전한 이해와 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마치 전도하는 마음으로 설득에 임해야 한다.
성장
성장하려면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성장에는 인습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일정 기간 자신을 보호해 주던 것이 어느 순간 더 이상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보금자리를 벗어나면 외풍이 거셀 수 있다.
불가피한 일이다.
온실에서의 성장은 나약하고 한계가 있다.
성찰
곳곳에 cctv가 있어 불편하다.
그런데 나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부끄럼 없이 산다면 불편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cctv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면
잠의 세계는 침대 바로 곁에 있다.
따라서 수면시간이 아니면 침대를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원한 잠의 세계는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근본원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나친 명예욕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증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스트레스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평범하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것이 좋다.
생긴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머리가 처리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고하든가 아니면 동시에 몇 개의 일을 처리하여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극도의 스트레스가 오게 된다.
컴퓨터의 과부하 상태와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가면 스트레스 요인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3.
승패
승패는 모든 전쟁터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영원한 승리도 영원한 패배도 없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실패가 두려우면 애초에 도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
현격한 승리는 진정한 의미의 승리라 할 수 없다. 승패를 가늠하기 심히 어려운 상황에서 갖가지 고난을 극복하고 얻은 것이라야 진정한 승리다.
최선을 다 하였다면 실패에 너무 상심해서는 안된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으로써 실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승리에 오만하지 않고 실패에 의연한 자가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이러한 인간이 되려면 많은 정신수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 인생에 걸쳐 승패가 되풀이 되도록 신이 배려한 것은 아닐까.
승패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정신수양이 필요한 것 같다.
시작
일단 시작하라.
나머지는 신이 도울 것이다.
신은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신
자연의 광대한 스케일, 다양성, 오묘함을 바라보며 신의 부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파리 한 마리나 나뭇잎 하나도 공장에서 찍어내지 못한다.
심판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는 경우, 깨달으려 상당히 노력하였다는 점을 참작해 주소서.
아침
어둠이 가고 새아침이 밝으면
뒷동산은 새들의 나라
아침햇살을 찬양하며 합창을 한다
나뭇잎은 살랑이고 풀잎들은 기쁨의 눈물을 반짝이네
초대받은 사람들은 행복한 하루를 다짐하네
안개
안개 속을 거닐며 신비한 세계에 빠져든다.
항상 대하던 나무들과 건물들이 경건하게 묵상을 하는 듯 하다.
만나는 사람들도 한층 인간다워진 것을 느낀다.
안개 속에는 만물을 경건하게 하는 묘약이 함유된 것 같다.
가슴 깊이 안개를 들이마신다.
영생
야생화는 씨앗을 통하여 영생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자신에 대하여는 이런 관념을 갖지 않는다.
영생은 내세가 아니라 이런 관념의 존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관념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별개의 인격체라는 점이 공고해질 때 이러한 관념은 소멸되는 것이다.
유교에는 내세가 없다.
유교에서 효도를 중시하는 것은 자식을 통한 영생의 개념 때문인가.
영웅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영웅으로 행세하고, 그렇게 추앙받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심히 불편해 진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에 몸 담고 있는 한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영웅이거나 바보다.
국가나 사회나 타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영웅의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이 사회에서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오솔길
오솔길을 걷는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고민들이 출렁거리며 밖으로 넘쳐 흐른다.
머리에 인 양동이의 물처럼.
우연,필연
''자연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영원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신도 그것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한다''(괴테)
이 세상은 우연 아니면 필연 중 한 가지 원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 세상을 필연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일부를 우연에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 경우 필연이 우연의 영향을 받게 되어 필연이라 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한 존재가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우연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자 기적이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모두 필연이다.
발생된 일은 발생될 수밖에 없었던 일, 발생되지 않은 일은 발생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일.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모두 우연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 일은 온 우주의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여 발생된 것이다.
물론 사람들 각자도 그 요인 중 하나다.
이러한 요인들로 이루어진 결과는 필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 만사는 필연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여 모두 우연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따라서 결과를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존하여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오만하지 말 일이다.
우주
우주를 탐구하면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황량하고 삭막하다.
거대한 우주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신비하다.
공기저항이 없고 진공상태이므로 운동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설명만으로는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중 신비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라도 그 생성과 변화, 장소이동, 우리와의 조우 등 모든 것이 신비롭다.
너무 많아 신비로운 것에 무감각해질 정도다.
신비로운 것을 찾으러 이역만리까지 헤멜 필요는 없다.
너무 위대한 것만 찾으려 하면 좌절한다.
이 세상은 그리 위대하게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광소나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제1악장을 즐겨 듣는다.
오늘도 눈을 감고 수없이 듣는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떤 때는 눈물이 어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하늘나라로 떠날 때 월광소나타를 들려달라고 딸에게 부탁하였다.
음악을 들으며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선하게 살면 더욱 설레일 것이다.
위대함
어떤 작품이 위대한 것은 그것이 피와 땀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위대할 것도 없다.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에 의한 것ㅡ결국 신의 작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번뇌를 극복하여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여론
이 세상은 여론 조작자들에 의해 이끌려 간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론 조작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구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유머
유머는 이를 받아들일 능력이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모욕이나 비난으로 들린다.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유전자
모든 생물은 생겨난 대로 살기 마련이다.
유전자의 지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전자는 신이 창조하였다.
따라서 어떤 생물의 행위를 탓해서는 안된다.
그 생명체는 유전자의 명령을 진리로 안다.
그 행위는 그 생명체의 책임은 아니다.
인간의 경우도 거의 동일하다.
모든 생명체의 삶의 여정이 유전자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생존을 위한 지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생존적이다.
의견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견도 동일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기주의
이기주의는 생명의 제1원칙이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를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적정한 한도에서 절제하는 것이 사회나 국가 존속의 전제조건이며, 인간성 유지 보전의 보루다.
4.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실현된 사회의 현실을 살펴보면 된다.
이데올로기에 취한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군중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생존을 위해 추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현실에도 이러한 모습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자본주의
자본주의로 인하여 인류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개선의 목적은 당연히 행복이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는 마치 종교와 같다.
내일의 찬란한 행복을 위해 오늘 인내하면서 더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내일이 언제 올 것인가.
우리는 항상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일의 노예다.
잠
우리는 잠을 잘 때마다 내세에 다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을 통하여 어제와 단절된 신선한 오늘을 맞이한다.
가능하면 기억도 어제와 단절하는 것이 신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
봄이 되면 산과 들을 장식하는 오묘한 색채.
아무리 노력해도 글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 추억에 간직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추억에서 꺼내보면 마치 오래된 사진첩에 꽂아두었던 흑백사진 같다.
수채화로 간직해 두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자전공전
지구는 적도 기준 시간당 2,000km 속도로 자전하면서 시간당 100,000km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
인간은 이러한 역동적인 지구를 타고 긴 여행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도 평온한 것은 신비스럽다.
혼돈 속의 평화.
잠
인간은 잠을 통하여 하루를 정리하고 아침을 맞아 새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신의 오묘한 작품이다.
잡초
잡초라는 용어는 너무 이기적이다.
인간에 대한 유용성의 관점에서 구분한 것이다.
유용성의 기준에서도 너무 근시안적이다.
산소공급이나 토양유출이나 사막화 방지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잡초도 어엿한 생명체다.
잡초는 땅 속 깊이 수많은 뿌리를 뻗어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그 생명력에 감탄한다.
재난
자연재해 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능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조금도 인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재해의 경우 누구를 원망하여야 할지 생각이 복잡하다.
이러한 경우 애꿎은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시사회로의 복귀다.
재능,천재
천재는 인격의 뒷받침이 없으면 뛰어날수록 더 불행하다.
이러한 이유로 열등한 자들도 자위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천재는 인류를 행복하게 해 줄 가능성은 있지만 자기 자신은 불행한 경우가 많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러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신에 의해 운명적으로 결정된다.
천재는 정신적 능력이 한 곳에 집중된 것에 불과하다.
천재성이 있는 분야 이외에는 정신적 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천재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자연이나 신의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화는 돌연변이를 통하여 진행되어 왔다.
돌연변이가 우연의 산물이라면 신의 창조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진화가 정착되기까지 천재는 배척과 시기로 어려움을 겪는다.
고독 속에서 불행한 일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극복하면 천재, 그렇지 않으면 바보라 지칭된다.
절제
멈출 수 있기 때문에 달린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고장난 사람들이 대책없이 달리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아찔한 일이다.
정신병
혼자 있을 때 하는 독백과 행동을 사람들 앞에서 하게 되면 대부분 정신병자로 취급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잠재의식이 그대로 타인에게 표출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신병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단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적절하게 숨길 능력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비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들을 기른다.
인간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전제된 것이다.
어미가 가까이 오면 새끼들이 입을 쫙쫙 벌리고 저마다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친다.
이러한 모습이 기억에 아련하고 그립다.
요즈음 제비는 점차 우리의 추억 속에서만 회상되고, 교과서를 통하여서만 아이들에게 연상될 뿐이다.
마치 공룡처럼.
절제
절제하면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이 없을 때 자유롭게 된다.
부족함을 채우려할 때 자유를 상실하고 타인에게 속박된다.
정
정을 많이 쏟아 부으면 섭섭할 일이 많아지고 이별의 슬픔도 커지게 된다.
절제가 필요하다.
정직
어떤 상황에서든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므로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을 솔직하게 밝힐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대부분 비굴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되어 실망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애초에 그 자리에 앉을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국민의 불행이다.
존재
부재를 통하여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존재할 때 그 가치를 깨닫도록 하여야 한다.
오감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된다.
존재여부에 관한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과학이 존재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이유
무릇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존재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존재에 관하여 불평해야 소용이 없다.
그 존재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되 그것이 불가능하면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구
지구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축복받은 존재다.
태양과의 거리, 자전과 공전, 낮과 밤, 계절의 변화 등 신비롭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 어느 하나라도 다른 조건이었다면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는 도저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의 의도된 작품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집착
새 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이 시기에 아직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낙엽.
마지막 잎새.
지나친 집착.
책임
불행에 처하면 자칫 극심한 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불행에 처하였다고 하더라도 가족적 또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심화된다.
청소
설거지는 창조적 행위다.
사용하지 못하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게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쓰레기를 인간의 주거지 밖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청소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주거지 밖도 지구라는 점이다.
지구 전체적 차원에서 보면 청소란 쓰레기가 놓인 장소를 이전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화
화를 내면 화를 내는 상대방과 똑같은 위치로 전락한다.
따라서 화를 낼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화를 내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다.
웃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화를 낼 일이 발생해도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대처할 일이다.
희망
푸른 하늘, 흰 구름, 불타는 태양은 태초부터 인류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문명은 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특히 예술적 측면에 대한 영향은 절대적이다.
여명이나 저녁노을은 가슴을 벅차게 한다.
희망사항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한다면 현실은 조만간 붕괴되고 말 것이다.
희망이 없어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