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북한산
1.
북한산
어스름이 내리는 북한산 정상
인적이 끊어져 정적이 흐른다
갑자기 작은 짐승이 나타나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앞을 가로막는다
반가움의 표시인가 위협하는 것인가
스틱을 불끈 쥔다
안심이 되지만 부끄럽기도 하다
북한산에 어둠이 내리니 까마귀 세상
낮에는 잠시 인간에 양보하지만
밤에는 되찾는 성지
수많은 까마귀들이 휙휙 소리를 내며
품위 있게 비상하고 하강한다
들어보라 까마귀들의 승리의 노래를
보아라 나무마다 경건히 기도하는 모습을
서쪽 하늘은 검붉게 물들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온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인간들이여 서둘러 하산하라
마치 패잔병처럼
북한산 계곡에 물이 흐른다
많은 세월 흐르고 흘러
바위들을 조각하였다
위치마다 다른 형태와 낙차로
악기가 창조되었다
그 위로 오늘도 수정같은 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들어보라, 아름답고 오묘한 노래를
오염된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는
천상의 노래를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디서도 그 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에 바람이 분다.
능선과 바위와 쓰러진 고목들을 스치며
바람이 불어온다
들어보라 저 태초의 소리를
온 몸이 전율한다
아득한 원시에도 모든 동물들이
저 소리를 들으며 전율하였으리라
이른 봄 오봉과 여성봉 사이 오솔길에
진달래가 만발한다
땀흘리며 오른 자들에게만 개방된
하늘의 정원이다
새들도 예쁜 소리로 노래한다
새들이라고 아름다움을 어찌 모르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탄성에
어찌 화답할 마음이 없겠는가
하산길에 고양이가 따라온다
품위가 있다
어슬렁거리며 자꾸 나를 쳐다본다
옆에 와서 배를 위로 하며 뒹군다
자유가 그리워 가출을 하였지만
배가 고픈 모양이다
원래 너의 조상들은 쥐를 잡아먹으며
야생으로 힘차게 살던 것이 아닌가
인간들이 너희들을 키우며
너의 힘찬 기풍을 앗아가 버렸구나
고양아
야성을 회복하라
인정의 좁은 굴레를 벗어나
대자연에서 힘차게 도약하라
아침마다 북한산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본다
심호흡을 하며 하루를 설계한다
신으로부터 매일 새로운 하루 하루를
선물로 받음에 감사한다
오늘은 무한하고 공허한 시간의 일부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오늘도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힘차게 첫 걸음을 내딛는다
어제와 같이
2.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북한산 정상에 올랐다.
인적이 끊어져 정적이 흘렀다.
이 때 어떤 작은 짐승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앞을 가로막았다.
반가움의 표시인 것 같기도 하고, 위협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야성이 느껴졌다.
당황하였다.
순간적으로 스틱에 힘을 주었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짐승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그들 사이에 의사소통 방식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에 대한 연구가 그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관심을 가지면 짐승이 위협을 하는지 아니면 반기는 것인지 분별을 하게 될 것이다.
반기는 것인데 위협으로 오해하고 대응하면 서로 불행이다.
그 반대이면 상당히 위험하다.
북한산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 까마귀 세상.
낮에는 잠시 인간에게 양보하지만 밤에는 되찾는 성지.
수많은 까마귀들이 휙휙 소리를 내며
품위 있게 비상하고 하강한다.
들어보라 까마귀들의 승리의 노래를.
보아라 나무마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서쪽 하늘은 검붉게 물들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온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서둘러 하산하라.
마치 패잔병처럼.
북한산 계곡에는 물이 흐른다.
수많은 세월 흐르고 흐르며 바위들을 조각하였다.
위치마다 색다른 형태와 낙차로 조각하여 악기가 창조되었다.
그 위로 오늘도 수정같은 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가만히 들어보라, 아름답고 오묘한 노래를.
오염된 영혼과 인생의 고뇌가 깨끗이 정화되지 않는가.
가히 천상의 음악이 아닌가.
고요한 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디서도 그 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에 바람이 분다.
능선과 바위와 쓰러진 고목들을 스치며 바람이 불어온다.
태초의 소리다.
아득한 원시림 시절에도 모든 동물들이 저러한 소리를 들었으리라.
인간의 조상들도 들었으리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온 몸이 전율한다.
원초적인 생명의 소리이기 때문이리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공명하는 것이리라.
북한산의 능선은 온통 바위로 되어 있어 험난하다.
많은 세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흙이 대부분 씻겨 나갔기 때문이다.
어느 구간은 밧줄이나 구조물을 의지해서 올라야 한다.
발을 어디에 디딜까 고심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인생과 같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세상이 드넓다.
등산의 어려움을 극복한 자에 대한 보상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의 마음은 왜 이리도 비좁기만 한 것인가.
심호흡을 한다.
대자연을 가슴깊이 들이마신다.
산은 인생의 학교다.
한 번만 올라갔다 내려와도 인생에 관한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얻게 된다.
산에 오르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속세에서 크게 보이던 것들이 아주 작게 보인다.
산에 오르면 적당한 때에 스스로 하산하여야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하산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점을 깊이 숙고하면 욕심으로 빚어지는 어리석은 상태를 상당부분 피할 수 있다.
이는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산은 등산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산할 준비가 완벽한 상태에서만 등산을 하여야 한다.
하산에 문제가 없을 정도만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희생양으로 바쳐야 할 수도 있다.
이른 봄이면 오봉과 여성봉 사이의 오솔길은 진달래가 만발한다.
땀흘리며 오른 자들에게만 개방된 하늘의 정원이다.
새들도 예쁜 소리로 노래한다.
새들이라고 아름다움을 어찌 모르랴.
새들이라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탄성에 어찌 화답할 마음이 없겠는가.
북한산은 철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특히 겨울이면 눈이 덮이어 마치 수묵화 같다.
오르는 길이 미끄럽고 바람이 살을 에이지만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오르면 어느덧 정상에 이르게 된다.
기쁨은 역경에 비례한다.
그러나 적당한 때에 하산을 하여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생도 동일하다.
이를 지키지 못해 추락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어느 날 하산하다가 고양이를 보았다.
품위가 있었다.
어슬렁거리며 자꾸 나를 쳐다본다.
내 옆에 와서 배를 위로 하며 뒹군다.
아마도 자유가 그리워 가출을 하였지만 배가 고픈 모양이다.
원래 너의 조상들은 쥐를 잡아먹으며 야생으로 힘차게 살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인간들이 너희들을 집에서 키우며 너의 힘찬 기풍을 앗아가 버렸구나.
이른 아침마다 창문을 통하여 북한산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하루를 계획한다.
신으로부터 매일 새로운 하루 하루를 선물로 받음을 감사한다.
오늘은 무한하고 공허한 시간의 일부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관리 가능한 시간이다.
오늘도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힘차게 첫 걸음을 내딛는다.
어제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