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필 2024. 11. 3. 20:06

# ''서로 격려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준다''(에픽테토스)

"적이 친구보다 더 감사할 때가 있다.

친구는 종종 우리의 결점을 용서하지만, 적은 그것을 호되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워 눈물을 글썽이던 친구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자책하였다.
어느 날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어보라고 권하기에 좀 유치한 내용 같다고 말하였다.
두고두고 후회하였으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 얼마 후 하늘나라로 갔다.
한 번 보고자 하였으나 친구가 원하지 않았다.
어린왕자와 같은 모습으로 간직되기를 바랐나 보다.

관이 묵직하였다.
슬픔이 응축된 것 같았다.
친구는 신부님의 인도로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서로 가는 길이 달라졌다.
친구는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다.
하늘나라가 좀 더 친숙하게 되었다.

다정하던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삶의 여정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이제야 어린왕자를 읽고 또 읽어 본다.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의 그림을 모자그림이라고 우기는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 친구는 어느 머나 먼 별나라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겠지.

#  "빛나는 곳을 혼자 걷는 것보다, 어둠 속을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훨씬 낫다."

(헬렌 켈러)

 

친구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며 인생의 고뇌를 잠시 잊게 해 준다.
반백의 죽마고우들이 둘러앉아 추억을 씹는다.
웃음에 버무려지고 세월에 숙성된 추억들을.

노년에 이른 친구들.
육체적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영혼의 기본적 모습은  젊은 시절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원숙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허한 마음을 이러한 생각으로 채운다.

친구들은 비슷한 시간적 공간적 체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일정 부분 서로 분신과도 같다.
친구들을 바라보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

수첩을 뒤적이다 이미 오래 전에 하늘나라에 간 친구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눈에 띈다.
조심스레 전화를 걸어본다.
소용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차마 지우지 못한다.
마음으로 연결되었던 한 가닥 끈까지 끊어지는 듯하여--

친구들을 바라보며 세월이 상당히 흘러갔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어깨가 처진 모습들을 보며 마음이 쓸쓸해진다.
흰 머리들은 염색을 하였지만 나이를 감출 수는 없다.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자식들은 짝지어 내보내고 이제 서서히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차례가 되어 감을 느낀다.

친구들 앞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써야 소용도 없다.
서로 영혼의 모습을 낯낯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대로 만나면 된다.
자랑할 것도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지극히 편안하다.
가식적 만남은 얼마나 피곤한가.

# 철학자 니체는, '지식인은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진리를 사랑하는 자의 자세이며 진정으로 친구를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다.
적이 가는 길이 올바를 때에는 비난을 받더라도 박수를 치고,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경우 미움을 받더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한다.

친구는 나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친구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나의 진정한 모습이 비추인다.
삶에 찌들어 나의 영혼이 혼탁해지면 친구의 얼굴에 슬픔이 감돈다.
말이 필요없다.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때 문득 영혼이 정화된다.

인생길에서 어려움이나 외로움에 처했을 때, 친구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낀다.
내가 그러한 친구로서 행동을 하여 왔는지 되돌아 본다.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혼자 낙원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괴테)

낙원은 행복한 타인과 공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름답고 명예롭고 부유하고 권력이 많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신의 창조물에 감탄하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어둠에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 빛에 혼자 가는 것보다 낫다" (헬렌켈러)

친구들이 하나 둘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나이도 되었다.
하늘나라로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할 때는 선대들을 배웅할 때와 의미가 사뭇 다르다.
이제는 나 자신이 떠날 시기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본향으로 귀향하는 나그네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떠나고 싶다.

 

(2025.4.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