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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정의

주라필 2024. 11. 7. 15:29

# "정의로운 자의 찬란한 행위는 육신의 고향인 흙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는다." (핀다로스)

이러한 말이 진실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이는 너무 이상론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이에 반하는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정의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택하는 사람도 많다.

오로지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가 속한 나라의 이익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러한 사람들도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기도 하였다.

자신의 이기주의적 속성을 숨기려 애를 쓰기도 하였다.

명예를 위해서.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사람들도 아주 당당하다.

자기의 이기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연설도 하면서 마치 현자 노릇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연설에 대해 드러내 놓고 환호하고 투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막말, 성추행, 의회난입, 가짜뉴스 전파, 여성 및 성소수자 비하, 지나친 자국우선주의, 독재자 옹호로 일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되는 현실이다.

정의에 대한 이기주의의 승리다.

국민 상당수가 이러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인간의 문화가 점차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심히 왜곡되고 있다.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생존(경제)는 현실이고 정의는 이상이다.

생존은 가깝고 정의는 멀다.

생존에 위기가 닥친 사람에게 정의는 공허한 용어로 들린다.

 

이러한 때 이를 악용하는 정치가가 등장한다.

생존의 위기가 처한 사람에게  달콤한 공약을 제시한다.

이들은 먼 미래에나 성취될 공약은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장 생존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제시한다.

국가의 미래는 오늘의 생존 다음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갑자기 경제를 되살려 생존의 위기에서 탈출시키는 묘약은 없다. 

이러한 경우 가진 자로부터 세금을 중과하는 등의 정책으로 재산을 빼앗아 가지지 않은 자에게 분배하는 공약을 제시한다. 

이 경우 가진 자의 저항이 있게 되나, 가지지 않은 자가 훨씬 더 많으므로 표에 이득이 된다.

 

그러나 가진 자의 재산은 한정되어 있고, 재산을 빼앗기며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외국으로 도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 전체의 부가 점차 고갈된다.

가지지 않은 자도 결국 더 가지지 않은 자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일이므로, 현재 생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가가 당선된다.

이는 일종의 조폭정치다.

 

위와 같이 국내의 자산가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분배하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강대국은 타국을 침략하여 타국의 재산을 빼앗아 자국의 국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진행한다.

이러한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는 대부분 독재자가 득세를 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의 국민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 자유를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는 가까운 장래에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강대국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을 취하는 나라도 있다.

관세장벽을 높이는 등 경제적 침략을 한다.

억울하면 자국에 공장을 설립하라는 것이다.

지나친 자국 이기주의이고 부도덕하다.

이러한 방식은 자유로운 국제무역을 위축시킨다.

그리고 자국 경제의 체력을 약화시킨다.

최선을 다 하여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점차 쇠약해지는 것이다.

 

물품에 따라서는 강대국 자체의 생산비가 타국의 생산비보다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자유무역의 잇점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결국 강대국의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자국의 국민들을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 있다.

타국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방식도 종말을 맞게 마련이다.

이것도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여 방치하면 인간은 한낯 짐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부도덕한 인간마다 그 머리에 벼락이 친다면 그 사회는 한층 아름답게 될 것이다.
십자가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인류가 멸종되지 않을까.
요즈음의 인간사회를 보면 마음이 어둡다.
신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정의가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 정의의 의미가 악용된 사례가 많다.
정의나 국민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의 폭력이나 부정의는 명예까지  탈취하려 한다.

부정한 것이 부정한 방법으로 제거되면 그 후에도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을 일단 멈추고 질서를 세운 다음 이에 기초하여 정당한 절차에 의거하여 부정을 정리해야 한다.
부정한 것도 부정하게 제거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이기심이나 권력욕에 의한 행위라 간주되기 때문이다.

악인이나 부도덕한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는 그들의 소행에 박수를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면  점차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사람들 자신이 선천적으로 악을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사회가 노력해야 할 점이다.

선의로 정의를 확립하려면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부정의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여야 한다.
정의의 여신의 칼에는 이러한 점에 관한 깊은 통찰이 깃들어 있다.

자유 평등 정의에 눈 뜬 자는 행복하기 어렵다.
세상은 애초에 부조리하게 창조되어 부자유 불평등 부정의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변경시키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을 뿐 아니라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  부조리한 것이 세상의 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조리가 없어지는 날이 천국일지는 모르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현하려는 노력은 대부분 공리공론으로 끝난 것이 인간의 역사다.

아주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고는 할 수 있다.
급격하게 개선하려고 하다가 더 불행한 상태로 퇴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변경시키지 못할 바에야 일정 기간 이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점차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 해도 양심이나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명예나 권력을 위해 그러한 행위를 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요즈음 그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부당한 것도 일단 정착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일단 이득을 얻으면 권리로 생각한다.
뼈다귀를 빼앗겼을 때 개가 하는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유는 승자가, 평등은 패자가 절실히 원한다.
이는 정의보다는 이기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정의의 깃발 뒤에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 제도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평등을 주창하는 정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승자보다는 패자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나약한 존재이므로 인과의 법칙이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적용되는 곳에서만 정의가 가능할 수 있다.

사회가 너무 혼탁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정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의, 진리, 진실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는 가치다.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폭군이 탄생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또다른 피해자가 양산된다.

눈이 너무 밝은 사람은 쓰레기가 너무 잘 보여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너무 정의로운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위해 노력하되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포용하여야 한다.
이것이 정의를 세우는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정의는 추상적인 관념이고, 현실은 관념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복잡한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동을 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이 정의인가, 진리인가.

아니면, 언행을 하지 말라.'

 

(2025.3.28.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