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 인생
# 등산을 하다가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면서 문득 자유가 아주 가깝다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현실도피일 수도 있지만 본향에 대한 무의식적 향수일 수도 있다.
술 마약 게임 등은 현실도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정시간 현실에서 동떨어진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이 장기화 되면 육체와 영혼이 피폐화 된다.
영혼이 육체와는 다른 세계에서 장시간 머물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뇌에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극복할 일이다.
우리의 눈에 미래가 훤히 보인다면 오늘 분투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이와 무관하게 미래는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장막을 쳐 놓은 것은 신의 각별한 배려다.
나태나 좌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리라.
인생을 회고해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인생을 결과로만 평가하면 인생무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생은 과정이다.
하루하루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의 결과로만 평가된다.
인간은 이에 익숙하게 되어 인생무상이라는 관념에 젖게 된다.
결과는 자유의지 이외에도 무수한 요인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정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결과에 오늘의 희망이 더해진 것이다.
미래에 결실을 이루어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여지는 오늘의 희망이라도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인간의 행복은 이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이것이 인간다운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은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행복은 약간의 결과와 대부분의 희망으로 이루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잘 살기 위한 준비에 대부분의 인생을 바친다.
막상 잘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인생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은 허무하다.
결과는 짧고 과정은 상당히 길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인생이란 긴 시간과 무게를 생각하며 오늘을 못견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오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인생이다.
내일의 큰 웃음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웃음들이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늙었다는 징조다.
야누스와는 달리, 뒤를 돌아보며 동시에 앞을 볼 수는 없다.
과거는 조금도 변경시킬 수 없다.
신조차도 그러하다.
단지 과거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우울해 진다.
가능하면 이를 교훈삼아 앞을 바라보며 전진할 일이다.
삶을 단순화할 일이다.
물질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삶의 범위가 확대되면 깊이가 얕아지고 혼란이 가중된다.
삶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욕심의 소산이다.
대부분 허상이다.
행복에 대한, 그리고 인생의 근원적인 고독에 대한 대책 없이 막연히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큰 불행이다.
현대 의학이 인간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면서 고통도 연장시키는 면도 있다.
수명을 연장시키며 고문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고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노인과의 만남이 기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허무하다.
그러나 특별한 인연이나 추억이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기쁨에 의한 만남은 어렵다.
젊은 시절부터 아름다운 인연이나 추억을 많이 쌓을 일이다.
삶의 종착역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슬프다.
삶과의 결별을 위한 육체와 영혼의 고통을 바라보며 속히 생을 마감하여 고통이 종식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이별의 슬픔에 대한 신의 치유법인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치매에 걸린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영혼의 영원성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철학과 종교의 무거운 과제다.
나의 치매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임종의 순간에라도 인생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싶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이를 표현한 후 임종하고 싶다.
그 때에 보이는 인생의 모습이 아름답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를 표현할 몇 초의 시간이 허락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