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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노예

주라필 2024. 12. 8. 16:39

#  ''노예게는 주인이 한 명 뿐이지만, 야망을 품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이다''

(라 브리예르)

야망이 큰 사람은 평생 타인의 노예로 살게 된다.
정치인들을 보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도 어느 분야든 성공한 사람들은 정치의 길로 가려 한다.
권력욕이 인간의 욕심 중 최상단에 위치한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끝없는 부의 증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평생 노예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생존의 필요를 과도하게 초과한 부는 재앙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한 부의 추구는 자유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생존을 해야 자유도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사치를 자유와 교환하는 것은 심사숙고 해야 한다.
노예의 길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공식적으로는 노예는 없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상당히 많다.

"부는 지혜로운 사람의 노예이지만 바보의 주인이다." (세네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자신의 인생길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걸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성이나 습관의 노예가 된다.


자식들에 대한 과보호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의 방임이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녀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동안 잘 살아 왔듯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로써 노예 상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자립하였기 때문이다.

#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노예는 이중의 노예다.

육체 뿐 아니라 정신까지 노예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노예는 타인의 의사에 굴종하는 것이다.
이념이나 자신의 편견에 굴종하는 것도 동일하다.
대부분 굴종에 익숙하게 된다.
생각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굴종이 영속된다.

어떤 문제에 관하여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A의 생각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A에 대한 정신적 노예상태라 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함에 있어 무엇이 옳은가 라는 생각보다는 권력자나 군중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된다면, 이는 사회적 노예상태라 할 수 있다.

생각을 깊게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므로 이를 회피하고 권위나 권력이나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있다.
이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비화된 군중에 휩쓸려 자신과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된다.
생각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사회적 책무다.

교육의 요체다.

민주주의 사회는 상당히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하여 구축되었다.
좀비화된 군중은 이러한 전제를 무너뜨린다.
야욕을 가진 자는 이러한 군중에게 끊임없이 포퓰리즘적 먹이를 던져준다.
이로써 독재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국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노력 없이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면 개성을 상실한다.
심지어 먹이를 통하여 노예화 된다.
포퓰리즘적 사회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다.
구성원이 대부분 노예인 사회가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흘린 땀만큼만 댓가를 취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건전한 사회의 전제조건이다.

이것이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길이다.

노예는 감히 주인의 말에 거역하지 못하고 맹종한다.
주인은 사람일 수도 있고 욕심 편견 아집 이념일 수도 있다.
이성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즉시 행동이 결정된다면, 이는 이념이나 편견이나 노예로서의 행동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념이나 편견에 휩쓸리는 군중을 보면 심히 두렵다.
우리 사회도 점차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외부적 사건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대부분 나의 통제 밖의 문제다.

일종의 주어진 조건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뿐이다.

이를 통하여 주어진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방안을 강구할 일이다.

비록 결과가 미흡하더라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다 할 일이다.

이것이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길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노예신분이었다.

부모가 노예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반대하였다.

''나를 대접하고 먹여주는 자야 말로 나의 노예다'

오히려 주인이 노예라는 것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반려견의 노예라는 취지다.

 

#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대신 생각해주는 사람의 영향 하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노예생활이다."

(톨스토이)

 

" 만일 주위 사람들을 모방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이를 좇는 것이 옳은지 여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 사회적 큰 불행과 범죄는 사회적 암시를 경솔하게 좇는 데서 시작된다."

(톨스토이)

 

(2025.4.2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