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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교육

주라필 2024. 12. 11. 17:34

#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데 있다.

'배운인간'이 아니라 '배워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한다.'' (에릭 호퍼)

우리 현실은 '배운 인간'에 치중하는 것 같다.
어쩌면 '배운 인간으로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지도 모른다.

배운 인간은 대부분 수동적이고 정지된 배움의 상태고, 배워나가는 인간은 능동적이고 진행중인 배움의 상태다.
후자는 스스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가 무한함을 고려할 때 '배운 인간'이라는 말은 오만의 극치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평생 '배워나가는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전자와 후자의 삶의 자세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배운 인간'이라는 말이 '지식'을 중심으로 한 것임을 고려하면,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의 한계와 불행은 예정된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영역에 속한다.
지혜는 평생 배워나가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신의 은총이다.
지식을 배워나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잉태된다.

# "교육의 뿌리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아리스토텔레스)

"배를 만들게  하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라고 하지 말라. 

그들에게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생텍쥐베리)

 

인간은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되는 것이다.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의 깨달음이 있어야 하므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너무 서두르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교육의 요체는 각자의 타고난 능력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타고난 능력은 신의 선물이다.
각자의 타고난 능력을 무시하고, 제도적으로 규격화된 교육을 강요하며, 이에 따라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제도적 폭력이다.

인간의 여러 가지 능력 중 단지 몇 가지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일렬로 세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다.
학업적 능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는 인간의 능력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람은 30세까지 교육을 받은 후 30년간 일을 하다가 퇴직한다.
교육과정이 고통이라면, 그 인생의 절반은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교육과정 그 자체에서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교육과정 자체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개성을 살리는 교육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학문에 심취하면 행복하다.

 

"교육의 위대한 목표는 앎이 아니라 행동이다."

(스펜서)

 

교육 그 자체로서 끝이 나면 한 사람만 구원할 뿐이다.

교육받은 사람의 실천이 뒤따르면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교육은 사회를 고려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육은 사회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기적 인간을 양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다.

결백하고 정직할 뿐 아니라 이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정의에 어긋남이 아니라 이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러스킨)

 

"고귀한 꿈을 가져라.

당신의 비전은 언젠가 될 당신의 모습에 대한 약속이다."

(제임스 앨런)

 

"시력은 눈의 기능이며, 비전은 마음의 기능이다.

비전은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가슴이 느낄 수 있는 자유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가슴이 무엇을 믿을지는 머리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마일즈 먼로)

 

(2025.4.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