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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적자생존

주라필 2024. 12. 27. 16:05

#  단순히 생존하지 말고 생활하라.
전자는 짐승같은 삶이라 할 수 있다.
생활하라.

명예를 위한 투쟁은 생존이나 생사의 투쟁을 극복하기 어렵다.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동일하다.
고양이와 코너에 몰린 쥐의 싸움이 그 예이다.

경쟁에서의 승패는 능력순이 아닐 수 있다.
마음가짐이 상당히 중요하다.
능력이 출중한 자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갖가지 방법으로 생존투쟁을 한다.
자기가 가진 갖가지 요소들을 무기로 사용한다.
권력 재산 명예 육체적 힘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더 잃을 것이 없는 가난, 어린아이의 숨 넘어가는 울움, 연약한 여인의 흐느낌, 환자의 신음 등도 무기로 사용된다.
후자는 인간의 감성에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이로써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권력욕을 자유 평등 평화 등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하는 능력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종교나 신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용서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그러나 그 이상을 위한 것이라면 용서되기 어렵다.
이 경우 상응하는 제재가 사회정의 유지의 버팀목이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를 변경시키면 부작용이 따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신중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약자를 보호하되 약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약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적 장치에는 한계가 있다.

과일의 씨앗은 일반적으로 달콤한 과육에 싸여있다.
동물들이 과육을 섭취하고 결과적으로 씨앗의 장소이동을 돕는다.
먹히지 않은 과일은 씨앗의 생존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한다.
과수의 생존전략이 눈물겹다.
주고 받는 것이 생존의 기본요소인지도 모른다.
생태계의 구조는 잔인하고 오묘하다.

#  생존경쟁은 우주적 질서 또는 신의 의지다.
이것이 진화의 원동력이다.
이에 대해 불평만 일삼는 사람은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펼칠 일이다.

승자가 오만하면 그 자리가 굳건할 수 없다.
패자가 쉽게 좌절하면 패배의 시간이 길어진다.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상당히 많으므로 미리 다 파악할 수 없다.
미리 겁을 먹지 말고 용감하게 경쟁할 일이다.

승리한 자의 얼굴을 보라.
사슴의 목덜미 살을 물어뜯고 피 묻은 입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사자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목덜미 살을 물어뜯긴 사슴은 어디다 억울함을 호소할 것인가.
현실을 한탄해야 소용이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을 함에 있어 열심히 뛸 생각은 하지 않고 경쟁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기회만 엿보는 것은 비겁하다.
선거철에 자주 보는 모습이다.
품위있게 경쟁하여야 할 사람들의 품위 없는 행동이 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당히 크다.

비록 승리를 위해서라도 적을 사지에 몰아 넣어서는 안된다.
생사의 투쟁을 하는 사람을 당해낼 사람은 없다.
생사의 투쟁과 승리의 투쟁은 차원이 다르다.

생명에 관한 신의 기본 구도는 약육강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다.
끔찍한 일이지만 생명체는 이러한 기본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도 엄청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앞으로도 사망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를 애석하게 생각한다면 속히 하늘나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운명이다.
이러한 희생에 애도를 표한다.

어쩌면 화장은 먹이사슬이라는 신의 기본구도에 역행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희생된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배은망덕한 일이다.

낚시질은 물고기를 속여 생명을 탈취한다.
비난받을 일이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그나마 용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희를 위한 것이라면 용납될 수 없고, 신의 의지에도 반한다.

물고기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인간의 유희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생명체를 유희 목적에 이용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의사를 존중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생명체의 희생과 고통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일이다.
신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