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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2. 평등
    카테고리 없음 2025. 1. 6. 15:44

    #  "탁월함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최고의 억제제이다."

    (오프라 윈프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부분을 타고 난다.
    결코 평등하지 않다.
    지능, 성격, 모습, 부모의 부, 환경 등등ᆢ
    이러한 것들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노력이 보태지지 않으면 오로지 신의 도움으로 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실상 노력하는 능력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어쩌면 슬픈 억지인지도 모른다.
    결국 노력하는 능력도 평등하지 않다.

    신조차도 인간을 완전히 평등하도록 창조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완전히 평등한 세상은 상정하기도 어렵지만, 그러한 세상에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신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다.

    완전히 평등한 세상은 자연도 동일하고 사람들의 얼굴이나 능력이나 성격도 동일해야 한다.
    수십억의 인간이 개성도 없이 모두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것이다.
    로봇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노력에 의한 결과의 불평등조차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노력할 필요가 없고,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불평등을 방치할 수도 없다.
    행복하지 않고, 평화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불행과 불화는 대부분 불평등에서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나친 불평등 상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

    인간의 선의에 기대서는 한계가 있다.
    인간성이 그다지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화를 하더라도 완전한 평등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여러가지 면에서 선천적으로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품위있는 삶을 보장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노력에 맡기는 것이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 속에서도 그나마 행복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공간상 격리되어 비교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공간이동이 점차 자유로워지고 핸드폰이 확산되면서 비교로 인한 불행이 증대되고 있다.
    불평등을 바라보고 행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기회가 균등하면 어느 정도 불평등을 받아들인다.
    불평등한 상황에 어느 정도 자신이 기여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결과의 지나친 불평등은 사회에 대한 증오를 잉태한다.
    출발선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최악의 불평등은 평등하지 않은 것들을 평등하게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다."

    (아리스토텔레스)

     

    불평등한 상태를 참지 못하고 분노하면서 강력히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
    분노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불평등한 상태를 참고 견디면 불평등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

    냉철한 마음으로 불평등한 상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되, 그 과정에서 너무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달성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노력을 신의 선물과 분리하려 한다.
    이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기득권은 사회적 동의를 전제로 한다.
    노력의 과실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이러한 관념에 기초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

    완전 평등을 강행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 사회는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의 수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평등과 완전한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타협이 불가피하다.
    타협을 하지 않으면 평화는 영원히 요원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물질적 번영에 기초한다.
    불가피하게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이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화된다.
    부자는 넘치는 재산을 주체하지 못해 불건전한 소비를 하게 되고, 빈자는 생존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일정한 정도 이상의 재산은 행복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재산을 몰수하면 자본주의의 뿌리가 흔들린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재산 이상은 누진세를 상당히 강화하되, 납세한 사람이 상당한 명예를 얻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나친 물질지상주의는 환경문제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도 혼탁하게 한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지상주의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장자크 룻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생성된 불평등의 해결을 위한 묘책은  밝히지 못하였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구 수를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다.
    더구나 자연은 룻소의 주장과는 달리 평등하지 않은 생존투쟁의 장이다.
    따라서 룻소의 이론으로는 불평등한 현실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평등한 세상의 건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룻소의 이론에 기반한 프랑스 대혁명의 전개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평등의 문제는 평화를 위해 인간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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