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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침묵
    카테고리 없음 2024. 10. 23. 18:17

    #  "자기가 옳을 때도 끝까지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내공이 상당한 사람이다."

    (칸트)

      

    격렬한 음악이 흐르던 중 잠시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잔잔한 음악은 그 깊이와 멋을 더해준다.
    자칫 감정이 폭발할 순간 잠시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차분한 목소리는 그 사람의 품격을 높여준다.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잠시의 침묵, 그리고 산하와 꽃과 석양과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멋을 아는 사람이다.

    쉼표도 음악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침묵도 대화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함축된 언어이고 소리없는 외침이다.
    오히려 품격있는 의사전달 수단일 수도 있다.
    침묵이 많은 시가 인간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울림을 주는가.

    침묵의 세계는 경계가 없다.
    마음 속 드넓은 우주를 넘어 신의 세계에 까지 맞닿아 있다.
    침묵의 소리에 침잠하면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오랜 기간 경건하게 귀 기울인 사람에게만 들리는 성스러운 언어다.
    빅뱅 이전의 우주는 침묵이었고, 그 이후도 침묵이 지속되고 있다.

    말은 침묵 속에서 걸러지고 숙성된 후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말은 불행의 원천이다.
    감성이 이성보다 상당히 빨라 말에 이성이 작용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상 이성도 상당히 불완전하다.

    침묵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다.
    신의 세계이며 영원의 세계다.
    영혼의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침묵의 세계를 낯설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에 친숙하지 않으면 인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어렵다.

    침묵은 영혼을 치유한다.
    침묵 속에서 대자연의 정기가 영혼에 스며든다.
    침묵 속에서 오래 숙성된 언어만이 인간의 심금을 울린다.

    침묵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침묵을 두려워한다. 
    침묵이 고독한 인생을 직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침묵의 시간에 자기 자신의 참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너무 미화되고 부풀려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침묵 끝에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  침묵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주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과 같다.
    침묵을 통하여 자연과 일체가 된다. 
    침묵 속에서 자연의 참모습을 보고 듣고 느낀다.
    침묵 속에서 꽃이 살며시 피어나는 소리, 나비의 날갯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이러한 때 시간은 멈추고 어렴풋이 영원 속에 존재함을 느낀다.

    자연과의 대화는 침묵 속에서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진다.
    말은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킨다.
    갑자기 자연 속에서 우리를 사회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때 아름다운 꿈에서 갑지기 깨어난 사람의 아쉬움이 있다.

    말은 오랜 침묵을 배경으로 할 때에 생명과 무게가 있다.
    침묵은 말을 숙성시킨다.
    말이 많은 사람은 시간의 대부분을 타인에 대한 험담으로 소비한다.
    타인이 없는 자리에서 타인에 대한 말은 칭찬 이외에는 하지 말라.
    칭찬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라.

    창조는 침묵에서 탄생한다.
    생명과 학문과 종교를 바라보면 이를 실감하게 된다.
    침묵의 세계는 세속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고차원의 세계다.
    침묵은 오랜 기다림이다.
    신의 시간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다.

    침묵은 그 자체로 종교의 수행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고행에 속한다.
    튀어 나가려는 쓰디 쓴 말을 붙잡아 되새김질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내부에서 순간적으로 감성과 이성의 치열한 싸움이 일어난다.
    침묵은 이성의 승리를 뜻한다.
    침묵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한 없이 부족함을 불현듯 깨닫는다.

    감성의 승리로 인한 침묵은 일종의 입막음이다.
    불만 표현의 강력한 의사 표출이다.
    자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원망이다.
    진정한 의미의 침묵이라 하기 어렵다.

    고요한 밤 침묵 속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라.
    무엇이 들리는가.
    우주와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세상의 운행이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때 나의 발자국이 보인다.
    왜 그리도 방황했던가.
    괴테는 말했다.
    노력하는 자는 방황한다고.
    나의 방황도 그러했던가.

    침묵은 빈 공간과 같다.
    이러한 공간이 없으면 얼마나 숨이 막히는가.
    그러나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공간을 가득 메워야 안심을 한다.
    공간이 생기면 깜짝 놀라 급히 쓰레기 같은 것들로 채운다.

    삶의 여유 내지 공간은 아주 중요하다.
    침묵도 동일하다.
    그러나 현대인은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나 침묵을 두려워한다.
    문득 인생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심한 공허를 느낀다.

    충만한 삶을 살지 않고 가식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허상으로 가슴의 공허를 채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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