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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영혼
    카테고리 없음 2024. 11. 6. 09:42

    #  "자신의 영혼을 아는 자는 그 속에 신적 본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깨달은 자는 항상 신의 선물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키케로)

     

    이제 날이 제법  쌀쌀하다.

    가로수 잎은 떨어져 인도 위에서 이리 저리 뒹군다.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낙엽들을 밟으며 왠지 죄스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때 문득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이제는 낙엽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원한 존재인가.
    아니면 숨을 쉬듯이 육체의 기능에 불과하여 육체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인가.
    아직 인간이 풀지 못한 난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전자의 의견이 옳다고 믿으며, 희망을 가지고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간다.
    진실여부를 떠나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일이다.

    영혼에 대한 믿음은 인생을 의미있고 품위있게 인도한다.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신앙과 같다.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의 속삭임은 분명 신비로운 존재다.
    과학적으로는 입증할 수 없지만, 육체와는 다른 존재를 어렴풋이 인식한다.
    진실여부를 너무 과학에만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수 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영혼의 건강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다.
    감정의 급격한 분출을 지긋이 견디며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영혼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의 압력이 극한상태에 이르렀을 때, 영혼의 운동을 할 기회라 생각하자.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흥분하게 한 사람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일이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주기적인 역경의 극복이 필요하다.
    역경을 의연하게 극복하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영혼이 상당히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오감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한다.
    오감은 세상과 통하는 창이다.
    소통의 주체는 우리의 영혼이다.
    인간의 육체가 서로 다르듯 영혼도 서로 다르다.
    이러한 다름과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것이 평화의 전제조건이다.

    영혼의 상태를 이유로 칭찬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타고나는 것, 즉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눈에 눈물이 어리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하였다.
    눈물로 영혼이 정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은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해 준다.
    현대인은 눈물이 상당히 메말라 있다.
    사회 구성원이 일정 기간 기뻐서 흘린 눈물의 양을 기준으로 행복지수를 산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짓 눈물로 이익을 취하는 자는 선한 사람의 영혼을 해하는 것이다.
    오히려 폭력으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너무 슬플 때 눈물은 뼈에서 나온다.
    더욱 슬플 때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눈물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소관사항일 것이다.

     

    # 깊은 산 속을 흐르는 청정한 시냇물이나 태고의 음향과 같은 바람소리는 영혼을 정화한다.
    이러한 때 눈을 지긋이 감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산과 들과 하늘을 바라보면 영혼이 한층 맑아진다.
    영혼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대부분 육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육체가 없고 영혼만 존재한다면 모든 욕심이나 미망과 슬픔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귀영화는 모두 일장춘몽이다.
    육체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중심으로 살아갈 일이다.
    그러나 육체의 생존은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만일 당신도 신처럼 육체를 무시한다면, 수많은 번뇌에서 벗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옷, 집, 명성, 그밖의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번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

    세월이 많이 흐르면 보금자리 같이 영혼을 보호하던 육체가 점차 영혼에 무거운 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서로 분리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탈출하지 못한 영혼은 점차 질식한다.

    수명이 길어지면 병든 영혼이 많아진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서 영혼이 영원하다는 생각이 한낱 희망사항일 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육체는 집에 있고 영혼은 지난 해 여행을 간 추억을 떠올린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마침내 나의 육체는 반가운 친구들과 약속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영혼보다는 너무 늦게.
    육체와 영혼의 분리.

    세상사에 너무 관심을 가지면 영혼이 혼탁해진다.
    그러나 세상사를 너무 무시하면 세상이 혼탁해진다.

    현자의 말 한마디가 잠자는 나의 영혼을 깨운다.
    젊은 시절에 삶의 고뇌를 극복하고, 노년에 육체적 고뇌를 극복하면서, 영혼이 완성되는 것이다.

    역경은 영혼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태풍.
    깊이 숨겨져 있던 영혼의 본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다.
    정화되기도 하고 부숴지기도 한다.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그럼에도 3차원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육체적 한계를 영혼의 한계로 여기는 습관에 익숙해 있다.

    창조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필요하다.
    영혼은 육체와 결별하여야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생과 사에 대한 철학의 확립이 필요하다.

    깊은 밤의 침묵.
    이 고요의 세계가 신의 세계이고 영혼의 안식처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상처입은 영혼은 침묵의 세계에서 치유되고 정화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경우 '세상'은 지구라는 3차원적 공간과 인간의 육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 하나씩의 별도의 세상을 형성하면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혼은 각자 상당히 다를 뿐 아니라, 고차원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각자는 그러한 세상의 영주다.

    사람들은 각자 별도의 세상을 형성하여 살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한다.
    가족 사이에서도 동일하다.

    각자의 세상에서는 기쁜 날, 슬픈 날, 화창한 날, 비오는 날,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세상에서는 화창한 날이지만, 다른 사람의 세상에서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하여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세상에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으로 생각되면 따뜻하게 위로해 줄 일이다.
    이러한 행위가 그 사람의 세상 변화의 한 요인이 되어 태풍을 잠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 각자가 다른 사람의 세상 형성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각자의 세상 사이의 충돌이 불화다.
    사람들 각자(어린아이 포함)가 그 세계의 영주이며 그 세상의 법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만 하더라도, 불화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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