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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4. 인생
    카테고리 없음 2024. 11. 27. 17:47

    #  요양원에 다녀왔다.
    한없이 심란하다.
    어느 때가 되어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온 것인가.
    그토록 총명하고 강건하던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자식과 손자들에 대한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구슬피 우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넘어져서 우는 거란다.
    부러웠다.
    언제 저렇게 소리내어 울어 보았던가.

    인생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 보면 우울해진다.
    비관론자는 인생을 너무 깊이 들여다 보는 자이다.
    평생 이러한 생각을 되뇌이며 이를 초탈하려 노력해 왔지만 실천이 너무 어렵다.
    인생길은 너무 험난하다.

    인간은 인생의 목적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점차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인생을 탐구하기 위한 평생에 걸친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내세에서의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  헨리나우웬의 '안식의 여정' 을 읽었다.
    평생 천주교 신부로 활동하다가 63세가 되어 1년간 안식년 휴가를 보내며 매일 쓴 일기다.
    신부는 평생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며 미국 전역을 행복하게 여행한다.
    그러면서 안식년 이후의 삶을 구상한다.
    2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구상까지도.

    그런데 신부는 안식년이 끝나고 한 달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평생 신을 섬기며 선하게 살아온 사람인데도, 자신의 일기를 교정조차 하지 못하고,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이제 신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노년에 이르러 갑작스런 죽음은 오히려 신의 은총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은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처럼 지고 질질 끌며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 무덤으로 가야 한다.
    이는 비극이다.

    이는 거의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이에도 신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세의 주민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육체가 십자가의 무게로 느껴질 때에야 진정으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  요즈음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이 그나마 행복한 시간이다.
    인간이 점차 경박해지고 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가슴에 어둡게 밀려온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이 아닐까.

    인생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인생은 일리아드 오딧세이 같은 대서사시다.
    생과 사, 사랑과 미움, 순경과 역경, 신의 가호와 저주 등이 점철되어 있다.
    단지 호머와 달리 눈이 너무 밝아 신의 세계를 볼 수 없을 뿐이다.
    이로 인하여 오만하거나 심히 좌절한다.

    인생의 목적은 가늠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목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점차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인생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만들어 가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 것을 만들려고 하면 결국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이르게 된다.
    소소한 것을 만들다 보면 어쩌다가 큰 것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전 생애 자체가 큰 업적이다.
    그 이상 어떤 업적을 원하랴.

    인생은 너무 길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인생을 한없이 낭비한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가치있게 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극히 짧다.
    그러나 실상 더 가치있게 보냈다고 하여 더 행복하였으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다.
    단지 인생에 대한 허무감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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