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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편견
    카테고리 없음 2024. 12. 4. 07:03

    #  대부분의 경우 사물의 모양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인다.
    만일 다른 위치에서 본 사실이 없는 경우, 그 사물의 모습은 자신이 보고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체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것도 동일하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

    동일한 사물의 모습에 관하여 달리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인내심을 가지고, 그가 보고 있는 면과 그의 시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에게는 사물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닐 수 있다.
    그에게 사물의 다른 면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자신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달리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보이는 인간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다.
    상대방의 가면과 우리의 사고작용이 가미되어 재창조된 존재가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과정에는 이기심이나 편견이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평가에는 신중을 기할 일이다.

    한 곳에 너무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편견도 이와 동일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말을 하면서 평상시보다 목소리가 커지거나, 서류를 대충 훑어보며 마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을 하거나,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즉시 말을 하거나, 타인을 경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일 수 있다.

    #  사람들은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왕적 태도다.
    뿌리깊은 편견의 일종이다.

    우리는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산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감옥의 벽은 점점 두터워진다.
    대부분 그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철옹성에서 탈출하려면 타인의 말을 경청하여야 한다.
    다른 관점에서 비판하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있는 것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토론도 편견의 극복에 도움이 된다.
    경청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 감옥을 깨뜨리려면 강력한 시련이 필요하다.
    시련이 어설프면 그 감옥은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여행도 그 감옥을 깨뜨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금자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계획된 여행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며 시련을 극복할 때 그 감옥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옥은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족쇄다.

    모든 사람이 진리나 정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히면 이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너무 저평가하는 폐단이 있다.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추구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항상 겸손할 일이다.

     

    #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벽에서 눈을 떼고 태양을 바라보는 결정적 순간이 진실을 깨닫는 극적인 순간이 됨'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벽에서 눈을 떼는 그 간단한 행위를 하지 못해 일평생 벽에 비친 꼭두각시의 인위적인 그림자를 실재하는 사물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인간들의 슬픈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갖가지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일정한 견해를 형성한다.
    이러한 견해는 서서히 자신감을 넘어 확신으로 변화돼 편견으로 굳어진다.
    편견은 자신의 보호의지나 이기주의가 더해져 더욱 공고해진다.
    편견이 눈과 귀를 가리면 정의나 진리나 진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각을 바꾸는 것은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가장 조금 알려진 것일수록 더욱 굳게 믿어지는 것이다.''(몽테뉴)
    알려진 간단한 사실에 자신의 많은 생각과 공상을 더하여 편견으로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소위 근거가 박약한 가짜뉴스가 판치는이유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오감으로 경험한 것만 실재한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편견으로 고착화된다.
    이것이 교정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충격이 필요하다.

    #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다른 의견은 보지도 듣지도 않고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며, 확신을 합리화 하기 위해 광분하기 때문이다.
    심하면 의견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큰 실패와 사회적 폭력은 이러한 상황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러한 편견이 더욱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다.

    시위현장에서 광분하는 정치적 편견이 이에 해당한다.

    편견이 확고한 경우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간편할 수 있다.
    그러한 시각으로 고민하지 않고 속히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성인들도 편견의 유혹에 굴복한다.
    수학공식을 암기하면 많은 부분에 관하여 증명을 하지 않고도 답을 산출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전혀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폐해에 이르기도 한다.

    이 경우 판단능력이 점차 상실된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학문도 인간관계도 정의도 실종되고 만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편견에 의해 진리가 왜곡된 사례가 많다.
    종교나 정치적 신념도 그러한 악역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믿음이나 신념도 너무 강하면 편견일 수 있다.
    수많은 비판의 과정을 극복한 것이라야 신뢰할 수 있다.
    종교나 정치적 신념은 이러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은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생존에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식물도 있다.
    그런데 식물의 생존에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 식물은 썩어버리고 만다.
    사랑도 그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다른 요인에 변화가 없는 한 동일한 원인에는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은 동일한 편견에 얽매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을 극복하는 방안일 수 있다.
    불가능하게 보인다면 발상의 전환을 할 일이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이러한 방법으로 불가능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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