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63-1. 적자생존
    카테고리 없음 2024. 12. 6. 09:48

    #  독수리는 새끼들이 자라면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아래로 밀어 버린다.
    힘차게 날아 하늘로 솟구치는 자는 하늘의 제왕이 되고, 날지 못해 땅에 떨어지는 자는 짐승의 먹이가 된다.

    생명에 대한 신의 의지는 적자생존이다.
    인간은 각자 1억개 이상의 정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나머지 정자들은 모두 희생되었다.
    희생된 정자들은 신을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이다.

    산보를 하다가 살구나무 밑에 살구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세찬 바람에 건강하지 못한 살구들이 떨어진 것이다.
    살구나무에는 건강한 살구들이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더욱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이것이 신의 의지라 생각되었다.

    인생은 치열한 적자생존의 장이다.
    인간은 탄생할 때부터 능력이나 가정환경 등 불평등한 점들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불가피하게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혹자는 모든 사람이 출발선에서는 공평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상속으로 인한 가정환경의 차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부여한 타고난 능력의 차이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차이는 주어진 조건이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할 일이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  인간들은 적자생존의 비정함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적자생존으로 설계된 신의 구도에 역행하는 혁명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노력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자들에 의해서 진행되기를 바란다.
    신도 인간의 이러한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주시기를!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을 보면 질투를 분발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것이 적자생존 세상에서의 기본 자세다.
    그렇지 못하면 질투에 지나친 에너지를 소비하여 결국 좌절한다.

    자연은 적자생존의 장이다.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는 냉혹하게 사멸한다.
    사멸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신이 창조하였다.
    따라서 자연의 이러한 현상은 신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유한성 때문일 것이다.

    인간도 자연에 속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이상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자 오만이다.

    어쩌면 그 이하라는 생각까지 든다.
    역경에 처하여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인간은 신의 입장에서는 잘못 창조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적자생존의 장에서는 살아남는 존재가 되기 위한 생사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신의 가호를 빌며.

    이것이 생명을 가진 자의 피하지 못할 운명이다.

     

    #  곰곰히 생각해 보면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희생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생존경쟁의 승자를 존속시키는 것이 신의 창조원리인가.

    인간도 동일하다.
    채식주의자도 동일하다.
    식물의, 생명의 희생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 동물중심적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살생은 모두 면책되어야 하는가.
    생존만을 위해서라면 일정부분 용서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위해서라면 면책되기 어렵다.
    욕심과 생존을 대비할 때 명백하다.

    욕심은 미래의 생존이나 사치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른 생명의 현재의 생존을 말살시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몇 조나 몇 천억원은 생존과 무관하다.
    사실상 몇 백억원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노력은 생존투쟁이라 할 수 없다.
    법에 의한 보호의 명분을 상실한다.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의 지나친 불균형은 용납되기 어렵다.
    권력이나 명예도 동일하다.
    이로 인하여 다른 생명의 존속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이 아니라 생사투쟁이기 때문이다.

     

    #  사과를 먹다가 썩은 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생사투쟁의 역사적 현장이다.

    갑자기 경건해진다.

     

    나는 직업상 생존투쟁이나 생사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용병에 불과하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다.

     

    다각적으로 상담하고 검토한 다음 링에 오르지만,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그 무기가 올바르다면 백기를 들고 링을 내려오는 것이 옳다.

    이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때에는 링 위에 있는 것이 괴롭고, 한 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정의나 의뢰인의 생존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깊고깊은 바닷속에 너의 아빠 누워있네
    그의 뼈는 산호되고 눈은 진주되었네'' (셰익스피어)

     

     

Designed by Tistory.